• 2023. 11. 15.

    by. heeha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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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미학과 미술사학의 제휴 ‘예술사의 철학(Philosophy of Art History)’은 예술사 연구에 체계적인 방법론을 도입하여 예술에 대한 논의를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학문으로 정초하는 작업을 의미 한다. 그것은 예술의 본질과 현상의 원리를 고찰하는 철학적 물음으로서 예술과 예술 해석의 개념적 기초를 구축하는 작업이다. 바젤, 빈, 베를린, 함부르크 등 독일어권 대학 학자들에 의해 진행된 미술사 학의 이론적 타당성에 대한 논의는 미술의 근원과 본질, 형식과 양식 그리고 의미를 해석하는 입장의 차이를 보이면서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이런 점에서 미술이론, 미술사 방법론 또는 미술사학 이론은 예술 철학의 주요 영역을 구성하며 미학과 미술사학을 연결 짓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  파사르게는 미술사의 철학이 미학과 미술사학의 중간에 위치하는 학문이며, 미학을 순수 미술 사 기술과 연결시키고 미술사 경과의 합법칙성을 연구하는 학문임을 말하였다. 

      예술사의 철학 바젤,비엔나,함부르크 학파
      예술사의 철학 바젤,비엔나,함부르크 학파

      바젤학파

      스위스 바젤학파의 대표자로는 부르크하르트와 뵐플린을 들 수 있다. 바젤학파는 미술작품에서 주로 형식과 양식의 중요성을 부각하였는데, 이 점에서 루모르의 전 통을 잇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부르크하르트가 문화사가인 점을 고려할 때 진정한 의미에서의 형식론 또는 양식사론을 주창한 이 학파의 대변인은 뵐플린이라 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부르크하르트는 문화사가로서 경험주의와 헤겔 철학의 가운데쯤 위치하는 입장의 이론가였다. 그는 자신의 문화사 원리가 모든 시대에 적용 가능한 것이라고 규정하면서 ‘광대한 정신적 지도’인 문화는 물질적이고 정신적인 국면 모두를 포용 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부르크하르트는 특히 시각예술을 넓은 문화사의 중심에 위 치하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는 형이상학적 체계의 개념만은 강력히 거부 하여 ‘역사철학’이란 개념을 합리적인 것과 비합리적인 두 화해 불가능한 요소를 결 합한 ‘켄타우루스’일 뿐이라고 비판하였다. 한편 사실과 기록을 중시하는 그의 태도 는 젬퍼와 루모르의 정신을 계승하고 있는 측면이다. 부르크하르트는 현실의 개별 성을 개념에서 도출되거나 구성되는 것으로 보지 않았다. 그는 개념보다는 생생한 감각적 직관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부르크하르트는 헤겔의 관 념론과 어느 정도 연관을 맺으면서 동시에 그로부터 거리를 취하는 경험주의의 입 장을 유지했다. 그러나 그에게서 경험주의의 국면은 무엇보다 문화 전체의 그림을 정확하게 구성하는 학자로서의 실천 방식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부르크하르트는 형 이상학과 경험주의 양자의 장점을 기초로 문화사의 기틀을 구축한 점에서 비판적 미술사학의 한 이정표가 되었다.

       

      비엔나 학파

      오스트리아의 비엔나 대학을 중심으로 형성된 비엔나 학파는 형식문제의 근원을 고찰하기 위한 의도에서 정신사로서의 미술사학 전통을 구축했다. 이 학파를 대표 하는 학자로는 리글, 드보르작, 제들마이어 등을 들 수 있다. 리글은 양식을 설명하기 위해 “예술의욕”의 의미를 정립하였다. 그는 미술에서의 양식 변화를 한 시대의 미술가가 어떤 문제에 직면하여 그것을 해결하려는 "예술의 욕"의 표명으로 보았다. 즉 미술가의 정신적 힘이 양식 변화의 근원이라는 것이다. 그는 이 예술의욕이 형식에의 의지 또는 시대의 미적 충 동과 같은 것이며 미술사의 보편적 법칙이라고 보았다. 즉 리글에 의하면 각 시기 의 예술이란 각 시기의 보편적 법칙의 표명인 것이다. 이 점에서 우리는 리글이 헤 겔로부터 영향을 받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리글은 인간에 의해 제작된 모든 산품이 동등한 가치의 것이라고 여긴 점에서 헤겔과는 생각을 달리한다. 리글은 공 예와 순수예술의 차이를 말하지 않았으며 각 시대의 형식을 설명하기 위해 다양한 분야의 시각적 자료를 사용하였다. 또한 그는 헤겔이 역사의 각 시대를 세계정신이 완전성을 향해 진행하는 단계들로 본 것과는 달리 역사의 모든 시기를 동등한 가치 의 것으로 생각했다. 리글은 이론의 실마리를 양식 문제에서 출발하여 구축한 점에 서 뵐플린과의 연관성을 보인다. 그러나 그는 미술가 개인뿐 아니라 시대정신 모두 가 예술 형성의 주요 근원이라고 생각한 점에서 뵐플린과 생각을 달리 하였다. 이 점은 리글이 양식사에서 출발하여 정신사로서의 미술사학으로 진행하는 교량의 지 점에 서 있음을 알려준다.

       

      함부르크(바르부르크) 학파

      한편 1910년대 독일의 함부르크에서 도상학(Iconography, Ikonographie)과 도상 해석학(Iconology, Ikonologie)의 미술사학이 형성되었다. 이것은 경험적 미술사관 에 대한 비판과 반성에서 비롯되어 미술 작품의 표현에서 작품의 의미를 찾는 방법 론의 체계이다. 이 입장의 대표자로는 바르부르크(A. Warburg)와 파노프스키를 들 수 있으며 이들을 중심으로 함부르크학파 또는 바르부르크학파가 형성되었다. 이 입장의 창시자인 바르부르크는 헤겔로부터 상당한 영향을 받았다. 바르부르크는 미 술작품의 의미를 형상과 원전과의 관계, 더 나아가 깊은 상징적 가치에서 찾아야 한다고 보았다. 다시 말해 미술작품을 철학, 심리학, 언어학, 종교학 등 인문학 전 반과 연관지어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작품 해석의 방법이 곧 도상해석학 으로서 이 방법은 형식이나 양식분석 위주의 미술사 서술을 더 광범위한 정신사의 범주로 확장시키는 것이다. 바르부르크의 입장은 대단한 주목을 받았는데, 그러나 이 방법론을 더 구체화하여 정의한 것은 파노프스키였다.